도쿄의 대표 명소를 하루 알차게 보는[투어&야경] [한국인 가이드, 단독투어(우리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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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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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절이며 도쿄 제일의 관광 명소인 아사쿠사 센소지, 나카미세 상점가, 일본에서 가장 높은 스카이트리, 우에노, 아키하바라, 긴자 명품 거리, 도쿄역, 천황의 거처지 황거, 메이지 신궁, 오모테산도, 시부야(109, 스크램블 교차점) 하라주쿠 다케시타 거리, 신주쿠, 도청전망대, 자유의 여신상(오다이바 해변공원), 다이바 시티 프라자(건담 모형이 있는 쇼핑몰)을 보신 후 하루 투어가 마무리되시면 숙소로 모셔다드립니다. 8시간 내 도쿄의 대표야경(오다이바, 레인보 브릿지, 긴자의 명품 거리, 도쿄 타워)도 즐기실 분들은 오전 10시 이후 투어를 추천합니다. (야경은 일몰 30분 이후부터가 절정입니다.) 

 

「👓도쿄의 성립은 약 400년 전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가 막부(幕府)를 시작하면서, '에도(江戸)'로 불린 지금의 도쿄(東京)는 일본 정치・문화의 중심지로 18세기 중반에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로 변모했다.[※ 8세기경 통일신라 경주(서라벌)는 세계 4대 거대 도시로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슬람 제국의 바그다드·당나라의 장안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 세계적인 국제 대도시로 인구는 17만명~최대 100만명까지 추정(천 년 뒤 조선의 한양(약 20만 명)] 도쿄東京 전도(奠都기존의 수도를 완전히 폐지한다는 의미의 '천도(遷都)'와 달리, 교토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수도를 정한다는 뜻)는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수도를 도쿄로 정한 사건이다. 메이지(明治) 원년인 1868년 에도 막부가 무너진 뒤 에도(江戸)를 도쿄(東京)로 개칭한 뒤 연호를 메이지(明治)로 고친 후 1869년 천황이 교토(京都, Kyōto)에서 도쿄로 옮겨으며, 정부도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왔다. 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이동하면서 도쿄는 명실상부한 일본의 수도가 되었다. 도쿄도(東京都)는 1868년부터 1943년까지 도쿄부였으며, 1943년 7월 1일에 도쿄부·도쿄시가 폐지되고 도쿄도가 설치되었다, 도쿄도의 영어명칭은 "Tokyo Metropolis"이다. 도쿄도는 23개 특별구(동경 23구)와 다마 지역 26개의 시, 5개 정, 8개 촌으로 구성된 광역 지자체(Tokyo Metropolitan Area)다. 도쿄도는 인구 수가 2024년 기준 약 1,410만 명이며, 이 중 도쿄 23개 특별구의 인구는 약 980만 명이다. 도쿄도 면적(2,130㎢)은 서울의 약3.5 배(서울 면적 605.21㎢)

👓에도시대란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군사적 최고권력자인 쇼군('将軍 SHOGUN ,장군')이 되어 에도(현재의 도쿄)에 '막부'라고 불리우는 정권을 확립하고 나서 1868년에 붕괴될 때까지의 약 260년간을 말합니다.[(조선(朝鮮)선조(宣祖)36년/일본(日本)게이초(慶長)8년~조선(朝鮮)고종(高宗)5년/일본(日本)게이오(慶應)4년/메이지(明治)원년]

👓임진왜란: 1592년 (선조 25년) 5월 23일 (음력 4월 13일) ~1598년 (선조 31년) 12월 16일 (음력 11월 19일)

👓일본은 동아시아에 있는 네 개의 주요 섬[홋카이도(北海道ほっかいどう)·혼슈(本州ほんしゅう일본 본섬 중 가장 큰 섬이자 세계에서 7번째로 큰 섬)·시코쿠(四国しこく)·규슈(九州きゅうしゅう)]과 수천개의 부속도서들이 일본 국토을 구성한 섬나라다. 국토의 전체 면적은 37만 7,975㎢로(※ 대한민국의 약 3.8배, 한반도의 약 1.7배),국토의 약 70%가 산지(대한민국 63%가 산지), 인구는 약 1억2,380만명(2025년 말 기준 일본의 재류 외국인(외국인 등록자) 수는 총 412만 명, 일본 총인구의 약 3.3%,※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총 체류외국인은 258만명 이상, 대한민국 총 인구 약 5,109만명의 약 5%)으로 세계에서 11번째로 많다. 일본 국호는 ‘닛폰’(にっぽん) 또는 ‘니혼’(にほん)을 사용한다. 이는 일본어에서 한자(漢字 간지)를 읽는 방식이 다양해 발생한 현상이다. 공식적으로 나라 이름은 한자로 일본(日本)이라 표기한다. 보통 닛폰이 공식적인 읽기 소리로 많이 쓴다. 주로 엔화와 우표, 그 외에 많은 공공 기관 명칭이나 체육 행사 등에서 사용한다. 한편 니혼은 현대에 이르러 사용을 많이하며 일본인들은 자신을 ‘니혼진’(日本人, にほんじん)이라고 호칭하며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인 일본어는 ‘니혼고’(日本語, にほんご)라고 부른다. 닛폰과 니혼  같은 한자며 ‘태양이 떠오르는 땅’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명칭은 중국 수나라 시대(581~618) 이후부터 사용했다.(※ 1897년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대한민국 명칭은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당시 결정) 이처럼 니혼과 닛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전까지 주변국은 일본을 멸시적인 의미로 (倭) 또는 왜국(倭國, 왜나라)이라 불렀다. 주로 서양권에서 부르는 명칭인 ‘저팬’, ‘재팬’(영어: Japan)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동아시아를 순례했던 이탈리아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고대 중국어의 한 갈래인 우어(吳語, 오어)로 일본을 이르는 단어, ‘지팡구’(Gipangu)로 일본을 소개하였고, 이것이 수세기 동안 여러 변형을 거쳐 현재 명칭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자퐁 또는 야퐁(Japon)이라는 표기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우편물 발송에서 일본을 구분하는 국가기호는 JP이고 국제전화 국가 번호81이다. 유엔세계 보건 기구에 따르면 일본은 영아 사망률(출생아 1,000명당 2명 미만인 약 1.5명~1.9명)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낮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수명을 기록했다. 2022년 기준 OECD, NUMBEO가 조사하는 삶의 질 지수에서 아시아에서 첫번째다. 세계에서 이주대상국으로 인기가 많은 나라이며 2020년에 국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미틀리(remitly)가 조사한 가장 이주하고 싶은 국가 순위에서 캐나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US news & world report 또한 가장 살기좋은 나라로 캐나다에 이어 일본을 2위로 선정했다. 지난 2024년 뉴욕포스트는 퍼스트 무브 인터내셔널이 구글 검색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 세계인들이 가장 이민을 가고 싶어 하는 △첫번째 나라는 캐나다 △2위 호주 △3위 뉴질랜드 △4위 스페인 △5위 영국 △6위 포르투갈 △7위 일본 △8위 독일 △9위 프랑스 △10위 스위스 순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아시아권 첫번째)만이 이민 가고 싶은 나라 10위 안에 포함됐다.
 👓조선시대(1392년~1910년(14세기 말~20세기 초) 무렵 일본은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등 서양 국가들과 교류했습니다. 일본의 대 서양 교류는 시기에 따라 크게 두 단계로 나뉩니다. 조선 전기에서 중기까지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남만 무역(南蛮貿易)이 활성화되었고, 조선 후기(에도 막부 시대)에는 쇄국 정책의 영향으로 네덜란드와만 제한적으로 교류했습니다.

1. 조선 전기~중기 (16세기 중반~17세기 초)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시기 일본은 서양인을 '남쪽에서 온 오랑캐'라는 의미로 남만인(南蛮人)이라 불렀으며, 이들과의 무역을 남만 무역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다네가시마(鹿児島県の種子島)에 표류하면서 일본에 처음으로 조총(화승총)을 전했습니다. 이후 1571년 나가사키 항을 개항하며 본격적으로 교류했고, 조총(화승총)과 화약, 기독교(가톨릭) 등이 일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이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군사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 가톨릭선교사와 함께 무역을 전개했습니다.

•에스파냐(스페인): 포르투갈에 이어 일본에 진출하여 교역과 프란치스코회 가톨릭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포교 활동을 벌였습니다.

2. 조선 후기 (17세기 전반~19세기 중반): 에도 막부의 쇄국 정책 시기

에도 막부가 성립된 이후, 막부는 그리스도교 확산이 체제를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가톨릭 국가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추방하고 쇄국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때 예외로 남겨둔 서양 국가가 바로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 포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무역'만을 원했던 네덜란드는 막부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일본은 나가사키에 있는 인공 섬인 데지마(出島,에도시대 무역관계에 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위해 설치한 무역 거주구)를 건설하고, 서양 국가 중  네덜란드 상인에게만 독점 교역권을 부여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럽의 학문과 기술이 유입되었는데, 일본은 이를 난학(蘭学, 네덜란드 학문)이라 부르며 의학·천문학·과학 등을 발전시켰습니다.

영국: 17세기 초(1600년대 초) 동인도회사를 통해 일본 히라도 섬(長崎県の平戸島ひらどじま)에 무역관을 설치하고 잠시 교류했으나, 네덜란드와의 무역 경쟁에서 밀려 스스로 철수했습니다.

3. 조선 말기 (19세기 중반 이후): 미국과 유럽 열강

미국: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매슈 페리 함대)이 나타나 무력시위를 벌였고, 결국 일본은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체결하며 오랜 쇄국을 끝내고 개항했습니다. 이후 영국·러시아·프랑스 등과도 잇따라 조약을 맺으며 전면적인 교류를 시작했습니다.당시 서양과의 교류를 철저히 통제하거나 거부했던 조선과 달리, 일본은 나가사키라는 창구를 열어두고 네덜란드를 통해 서양의 정세와 과학 기술을 꾸준히 흡수하고 있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일본은 조선 전·중기에는 포르투갈·스페인과 교류했고, 조선 후기 격동의 쇄국 시대에는 네덜란드와 독점적으로 교류하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습니다.

👓오란다 풍설서(阿蘭陀風説書おらんだふうせつがき,日本の「重要文化財」)는 에도 시대 쇄국 정책(스페인이나 포르투갈 같은 가톨릭 국가들이 종교를 전파하려는 움직임을 감시하고 막기 위함, 네덜란드는 16세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칼뱅주의를 바탕으로 한 개신교가 국가의 중심 역할함)을 펼치던 당시,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수집한 해외 정세 보고서입니다.(오란다상관원 대표는 매년 한 차례 에도로 가서 쇼군에게 지난 1년간의 유럽과 외국의 정세를 알려줬다.) '오란다(阿蘭陀)'는 네덜란드를 뜻하는 일본어 발음이며, '풍설(風説)'은 세상에 떠도는 소문이나 소식을 의미합니다. 당초 막부가 이 보고서를 요구한 가장 큰 목적은 서양 세력의 침투를 불허하고 서양 세력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특히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가톨릭 전파를 막기 위한 의도였나 당초 의도와 달리 풍설서는 세계로 눈을 뜨게 하는 기능을 했습니다. 일본은 풍설서를 통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유럽의 산업혁명, 나폴레옹 전쟁, 아편전쟁 등의 내용을 알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의 변화를 알게 된 풍설서의 내용이 일본의 메이지유신의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별단풍설서(別段風説書)19세기 중엽(아편전쟁 전후)부터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를 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더 구체적인 세계 뉴스를 다룬 '별단풍설서'를 추가로 징발하여 서구 열강의 침략에 대비 했습니다.」

👓이시기 조선은 임진왜란과 호란병자(조선 중기,16세기 이후)이후 사림파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주자학은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도덕적·정치적 기준으로 절대적인 교리로 변했습니다. 주자학의 해석에 도전하거나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철저히 탄압 받았습니다. 이시기 국가 정책을 '위정척사(衛正斥邪)'로 성리학(주자학)만을 절대 진리로 인정하고, 이외의 다른 사상이나 학문(천주교 등)을 이단으로 몰아 강력히 배척했습니다.(사문난적(斯文亂賊): 유교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도적이라는 뜻으로, 주자의 해석과 다른 의견을 내면 정치적으로 매장당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폐쇄성은 대외 정책으로도 이어져 명나라를 숭배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척화배외(斥和排外) 정책과 조선 말기의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으로 나타나 서구의 근대화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해 결과적으로 국가의 발전이 뒤처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포함

불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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